광산구 비아동 취병조형유허비에서 느끼는 조선 학자의 삶과 고요한 들판의 시간
이른 아침, 안개가 옅게 깔린 길을 따라 광산구 비아동의 취병조형유허비를 찾아갔습니다. 도심 외곽의 들판 사이로 난 좁은 길을 지나자, 낮은 언덕 위로 회색빛 비석 하나가 서 있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니 돌 표면에 새겨진 글씨가 세월의 흔적 속에서도 또렷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취병조형유허비’라는 이름처럼, 이곳은 조선 후기 학자 취병 조형 선생이 학문과 인품을 전한 자리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국가유산입니다. 주변은 고요했고, 새소리와 바람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습니다. 돌비의 거친 표면에 이끼가 살짝 낀 모습이 세월의 무게를 그대로 전해주었습니다. 인간의 흔적이 오래전 사라진 자리에서, 시간만이 천천히 흐르고 있었습니다.
1. 비아동 들판 속의 조용한 길
취병조형유허비는 광산구 비아동의 구릉지대 한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내비게이션에 ‘취병조형유허비’를 입력하면 논길을 따라 이어지는 작은 도로로 안내되는데, 차량은 인근 마을 입구 공터에 주차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후 약 5분 정도 걸으면 비석이 있는 언덕으로 오르는 길이 보입니다. 길은 완만하지만 흙길이라 비가 온 뒤에는 미끄럽습니다. 초입에는 비석을 소개하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고, 그 아래에 취병 조형의 생애와 업적이 간단히 적혀 있습니다. 이장 마을의 돌담을 지나 언덕 위에 오르자, 넓은 들판과 멀리 보이는 산줄기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한적한 아침 공기가 폐 깊숙이 스며들며 마음이 맑아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길의 끝에 선 비석 하나가 오히려 이 풍경의 중심처럼 느껴졌습니다.
2. 비석의 형태와 주변 배치
취병조형유허비는 높이 약 2미터 남짓의 화강암 비석으로, 단단한 받침돌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비신의 표면에는 세월의 풍화로 인해 일부 글씨가 희미하지만, ‘퇴계의 학문을 잇고 도를 전한 사람’이라는 문구가 여전히 식별됩니다. 비석의 머릿돌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그 곡선이 섬세했습니다. 주변에는 보호를 위한 낮은 철책이 둘러져 있었고, 바닥은 자갈과 짧은 잔디로 덮여 있었습니다. 안내문 옆에는 비석의 탁본 사진과 건립 연도(조선 철종 연간)가 함께 전시되어 있어 관람객의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오전 햇빛이 비석에 비스듬히 닿으며 글자의 음각이 선명하게 드러났고,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습니다. 그 빛과 어둠의 대비가 마치 역사 속 기억의 깊이를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3. 조형 선생의 학문과 인품을 기리다
취병 조형 선생은 조선 후기 광산 지역의 대표적 학자 중 한 명으로, 유학과 예학을 가르치며 많은 제자를 배출했습니다. 평생을 검소하게 살며 ‘도는 행함으로 완성된다’는 가르침을 남겼다고 전해집니다. 유허비는 그의 학문과 정신이 이어졌던 옛 서당터 인근에 세워졌으며, 후학들이 그의 뜻을 잊지 않기 위해 건립했습니다. 안내문에는 당시 광산의 유림들이 주도해 세운 과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비문은 한문으로 새겨져 있지만, 그 아래에 번역문이 함께 적혀 있어 누구나 내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학문을 닦되 교만하지 않고, 가르침을 주되 남을 꾸짖지 않았다’는 문구가 특히 눈에 남았습니다. 바람에 흩날리는 억새 사이로 그 말이 오래도록 메아리치는 듯했습니다.
4. 단정히 보존된 주변 공간
유허비 주변은 소규모 공원처럼 정비되어 있습니다. 비석을 중심으로 돌로 만든 둘레길이 원형으로 이어져 있고, 그 외곽에는 나무 벤치 두 개가 놓여 있습니다. 그늘을 만들어주는 느티나무 한 그루가 비석 옆에 서 있어 여름철에도 시원하게 관람할 수 있습니다. 울타리 밖으로는 얕은 개울이 흐르고, 그 물소리가 은근히 들렸습니다. 쓰레기통과 안내 표식이 정갈하게 배치되어 있었고, 관리가 잘 되어 있었습니다. 낮은 언덕 위라 주변 풍경이 탁 트여 있어 멀리 농촌 마을과 논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오후 햇살이 들판 위로 퍼질 때 비석이 가장 아름답게 빛났습니다. 단 한 점의 인공물만이 이 풍경 속에서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5. 인근의 유적과 함께 걷는 코스
취병조형유허비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비아오층석탑’이 있습니다. 통일신라 시대의 석탑으로, 이 지역 불교문화의 흔적을 함께 살펴볼 수 있습니다. 또한 ‘광산향교’는 약 15분 거리에 있어 조선시대 교육 문화의 연속성을 비교해 보기 좋습니다. 근처 ‘비아천 산책로’는 유허비와 이어져 있어, 논길을 따라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지역의 역사와 풍경을 함께 느낄 수 있습니다. 점심에는 비아동 전통시장 내 ‘비아식당’에서 지역 재료로 만든 된장국이나 청국장을 맛보면 좋습니다. 역사와 일상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동선이어서 하루 일정으로도 알차게 즐길 수 있습니다. 유허비를 중심으로 광산의 문화와 삶이 한눈에 엮여 있는 코스였습니다.
6. 방문 팁과 유의사항
취병조형유허비는 상시 개방되어 있으며 입장료는 없습니다. 다만 비석 보호를 위해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거나 손을 대는 행위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흙길이 많으므로 운동화 착용이 좋고, 여름철에는 벌레가 있으니 긴팔 옷을 추천합니다. 오전 9시에서 11시 사이 방문하면 햇빛이 비석 글씨를 가장 선명하게 비춰 읽기 좋습니다. 비 오는 날에는 길이 미끄러워 조심해야 하며, 강풍 시에는 낙엽이 많이 날리니 우산 대신 모자를 준비하면 편리합니다. 사진 촬영은 자유롭지만, 삼각대 사용은 자제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이곳은 한 사람의 삶과 사상을 기념하는 자리이므로, 잠시 멈춰 서서 묵념하듯 조용히 바라보는 것이 가장 어울립니다.
마무리
취병조형유허비는 단순한 돌비 하나가 아니라, 한 시대의 정신이 남은 기록이었습니다. 글씨가 바래고 돌이 닳아도 그 안에 담긴 뜻은 여전히 단단했습니다. 고요한 들판 위에서 바람과 함께 시간을 느끼는 순간,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는 감각이 생생하게 전해졌습니다. 다시 이곳을 찾는다면 해가 저무는 저녁 무렵, 비석 뒤로 붉은 노을이 스며드는 장면을 보고 싶습니다. 화려하지 않지만 깊은 울림을 남기는 장소, 취병조형유허비는 그 자체로 인간의 품격과 배움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광산의 조용한 유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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