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죽서원 전북 정읍시 덕천면 문화,유적
초여름의 햇살이 부드럽게 번지던 오후, 정읍시 덕천면의 동죽서원을 찾았습니다. 마을 초입에서부터 낮은 돌담과 오래된 회화나무들이 길을 따라 늘어서 있었고, 서원 입구에 다다르자 공기의 결이 달라졌습니다. 먼지 섞인 시골길에서 벗어나자마자 들려온 새소리와 대나무 잎이 스치는 소리가 공간 전체를 감쌌습니다. 서원은 조용했고, 오래된 건물의 목재 향이 은은하게 풍겼습니다. 선비들의 학문과 절개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곳이라 그런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마음이 자연스레 단정해졌습니다.
1. 덕천면 깊숙한 길의 끝에서
동죽서원은 정읍 시내에서 차로 약 20분 정도 거리이며, 덕천면사무소를 지나 산자락 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도착할 수 있습니다. 내비게이션에 ‘동죽서원’으로 검색하면 정확히 안내되며, 좁은 시골길을 따라가다 보면 돌담과 홍살문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도로 폭이 좁지만 차량 통행이 많지 않아 여유롭게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서원 앞에는 소규모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고, 평일에는 대부분 비어 있습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정읍버스터미널에서 덕천면행 버스를 타고 ‘동죽리 정류장’에서 하차 후 도보로 약 7분 거리입니다. 길 양옆으로는 밭과 개울이 이어져 있어 걷는 동안 시골의 풍경이 자연스럽게 동행했습니다.
2. 절제된 한옥의 품격
홍살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넓지 않은 마당과 단정한 건물들이 조용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중앙에는 강당 건물이 있고, 좌우로 동재와 서재가 마주보고 있으며, 뒤편의 사당은 낮은 담장 안에 단아하게 세워져 있었습니다. 기와의 선과 기둥의 결이 부드럽게 이어지고, 마루 위로 비치는 햇빛이 그림자를 만들며 공간을 채웠습니다. 기둥 밑의 초석은 세월로 반들반들하게 닳아 있었고, 처마 밑에는 작은 제등이 달려 있었습니다.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목재 사이로 은근한 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건물 사이의 간격과 구조가 절제되어 있어, 보는 사람의 마음마저 차분해졌습니다.
3. 선비의 뜻을 기린 배움의 자리
동죽서원은 조선 중기의 학자 송시열과 송준길 등 유학자들의 학문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고 전해집니다. 안내문에는 서원의 창건 연혁과 제향 인물이 기록되어 있었고, 내부에는 그들의 가르침과 덕행을 간략히 소개한 패널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제향 공간에는 위패가 단정히 모셔져 있었으며, 향로와 제기들이 고요히 놓여 있었습니다. 서원 특유의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도 부드러운 정취가 느껴졌습니다. 학문과 예를 함께 중시하던 옛 선비들의 정신이 공간에 스며 있는 듯했고, 바람 한 줄기에도 그들의 절도가 느껴졌습니다.
4. 세심한 손길이 머문 경내
서원은 규모는 작지만 관리가 잘 되어 있었습니다. 마당의 자갈이 고르게 정리되어 있었고, 풀 한 포기도 함부로 자라지 않은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안내 표지판은 새로 교체된 듯 깔끔했고, 대문 옆에는 방문객을 위한 벤치와 작은 그늘막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나무 아래에는 떨어진 매화잎이 고요히 쌓여 있었고, 향기는 은근하게 퍼졌습니다. 담장 밖으로는 논과 산이 맞닿아 있어 자연의 풍경이 그대로 배경이 되었습니다. 머무는 동안 들려오는 소리는 바람, 새, 그리고 발걸음뿐이었습니다. 복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한적하게 머물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은 드물었습니다.
5. 인근에서 함께 둘러볼 명소
동죽서원을 둘러본 뒤에는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내장산국립공원 정읍사공원지구’를 함께 방문하면 좋습니다. 특히 가을철에는 내장산 단풍이 절정을 이루며, 서원의 고요함과 대비되는 화려한 자연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또한 덕천면에는 ‘고택길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어, 옛 마을의 담장과 전통가옥을 따라 천천히 걷기에 알맞습니다. 점심 무렵에는 근처 식당에서 정읍 한우국밥이나 올갱이탕을 맛보는 것도 추천할 만했습니다. 동죽서원의 정갈한 분위기와 어울리는 순한 맛이었습니다. 소박하지만 전북의 고유한 멋이 살아 있는 코스였습니다.
6. 방문 전 알아두면 좋은 점
동죽서원은 상시 개방되어 있지만, 제향일이나 행사 시에는 사당 출입이 제한됩니다.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 사이가 관람하기 좋은 시간대이며, 해질 무렵에는 조명이 없어 서둘러 둘러보는 것이 좋습니다. 비 오는 날에는 마당의 자갈이 젖어 미끄러울 수 있으므로 운동화를 신는 것이 좋습니다. 주말보다 평일 오후가 훨씬 조용하며, 여름철에는 모기약을 챙기면 도움이 됩니다. 내부는 조용히 관람해야 하고, 향로 주변에서는 사진 촬영을 자제하는 것이 예의입니다. 준비물은 물 한 병과 가벼운 돗자리 정도면 충분했습니다.
마무리
동죽서원은 화려하지 않지만, 유학의 정신과 정갈한 미학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세월의 결이 배어 있는 목재와 잔잔한 바람, 그리고 조용히 앉아 있는 건물들이 모두 한 폭의 풍경처럼 느껴졌습니다. 오래된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깨끗이 유지되고 있었고, 선비들의 삶이 지금 이 순간에도 이어지고 있는 듯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마음이 한결 차분해지고, 사색의 여운이 길게 남았습니다. 다음에는 봄 매화가 필 무렵 다시 찾아 그 향기와 고요함을 함께 느껴보고 싶습니다. 덕천면의 자연과 역사, 그리고 정신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아름다운 유적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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