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 들판 위 고요한 미소, 죽산리석불입상 산책기
가을 바람이 차가워지던 평일 오후, 안성 죽산면 들판 너머로 자리한 죽산리석불입상을 찾았습니다. 논 사이 좁은 길을 따라가다 보면 멀리서도 불상의 실루엣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처음 마주했을 때의 인상은 ‘고요함’이었습니다. 소리를 삼킨 듯한 공기 속에서, 커다란 석불이 묵묵히 서 있었습니다. 주변은 농가 몇 채와 낮은 돌담뿐이라 오히려 불상의 크기와 존재감이 더욱 도드라졌습니다. 발밑에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었고, 바람이 불 때마다 돌기둥 사이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퍼졌습니다. 그 순간, 수백 년의 시간이 이 자리에 고스란히 머물러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1. 논길을 따라 이어지는 접근로
죽산리석불입상은 죽산면사무소에서 차로 약 5분 거리에 있습니다. 내비게이션을 ‘안성 죽산리 석불입상’으로 검색하면 포장도로 끝부분에서 좁은 농로로 접어듭니다. 길이 평탄하지만 차량 진입은 어렵기 때문에, 인근 공터에 차를 세우고 도보로 이동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길가에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어 처음 방문하는 사람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걸어가는 동안 시야가 확 트인 들판이 이어지고, 그 끝에 돌로 만든 불상이 홀로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길은 짧지만 바람이 세차게 불어와 체감상 긴 여정처럼 느껴졌습니다. 다가갈수록 발걸음이 조심스러워졌습니다.
2. 단정한 공간과 주변의 고요한 배치
석불입상이 있는 자리에는 낮은 철제 울타리가 둘러져 있습니다. 그 안쪽의 잔디는 고르게 다듬어져 있었고, 바닥에는 작은 자갈이 깔려 있었습니다. 주변에는 별다른 건물이나 시설이 없어 불상 자체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석불은 화강암으로 조각되어 있었는데, 표면의 결이 거칠지 않고 세월의 풍화가 오히려 자연스러웠습니다. 얼굴은 온화한 표정으로 남쪽을 향하고 있었고, 눈썹과 입술의 선이 부드럽게 이어져 있었습니다. 불상의 뒤편에는 낮은 언덕이 있어 바람이 막히며 공간 전체에 잔잔한 정적이 깔렸습니다. 바람에 스치는 나뭇잎 소리 외에는 어떤 인위적인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3. 시대를 품은 조각의 특징
안성 죽산리석불입상은 통일신라 후기 양식을 따르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불상의 비례가 안정적이며, 어깨와 손의 조각이 단단한 인상을 줍니다. 특히 손가락의 형태가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어, 석재의 강도를 고려한 장인의 기술이 느껴졌습니다. 법의 주름선은 깊지 않지만 흐름이 매끄러워 시선이 아래로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마모된 부분에서도 고운 세공의 흔적이 남아 있었고, 얼굴의 미소는 보는 각도마다 다른 표정을 만들어냈습니다. 이 불상이 전하는 안정감은 단순한 신앙의 대상이라기보다, 오랜 세월 지역의 중심을 지켜온 상징처럼 느껴졌습니다.
4. 조용히 머무를 수 있는 작은 쉼터
불상 오른편에는 벤치 두 개가 놓여 있고, 그 옆에는 방문객을 위한 설명판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글씨는 세월의 흔적이 조금 보이지만, 내용이 명확하게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근처에는 향을 피우거나 제물을 올리는 공간은 없었지만, 돌담 안쪽이 정돈되어 있어 잠시 앉아 머무르기에 충분했습니다. 방문객들이 남긴 흔적이 거의 없다는 점이 오히려 이 장소를 더 맑게 지켜주는 듯했습니다. 주변의 들꽃이 낮게 피어 있었고, 바람이 불면 그 꽃잎들이 불상 앞을 스치며 지나갔습니다. 인공적인 장식 없이 자연과 함께 어우러진 모습이 이곳의 매력이었습니다.
5. 주변 연계 명소와 산책 코스
죽산리석불입상을 둘러본 후에는 차로 10분 거리의 죽주산성에 들렀습니다. 산성 입구에서 오르는 길은 완만해 가벼운 산책처럼 다녀오기 좋습니다. 성곽 위에서 내려다보는 들판이 인상적이었고, 그 아래로 조금 전 머물렀던 불상의 위치가 멀리 보였습니다. 또한 인근에는 죽산면 전통시장과 작은 카페 거리도 있어 간단히 식사나 커피를 즐길 수 있습니다. 계절마다 풍경이 크게 달라, 봄에는 유채꽃, 가을에는 억새가 장관을 이룹니다. 저는 석불을 본 후 시장의 칼국숫집에서 따뜻한 점심을 먹으며 잠시 머물렀습니다. 시간의 속도가 한결 느려지는 하루였습니다.
6. 방문 전 알아두면 좋은 점
이곳은 별도의 입장료가 없고, 주차는 인근 마을길 공터를 이용하면 됩니다. 단, 주변이 농로이므로 트랙터나 농기계의 이동을 방해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여름철에는 벌레가 많아 긴 바지와 얇은 겉옷이 필요하며, 비 온 다음 날에는 길이 미끄러워 방수 신발이 좋습니다. 불상에 직접 손을 대거나 향을 피우는 행위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조용히 관람하는 것이 예의이며, 이른 오전 시간대에 방문하면 햇살이 불상 전면에 고르게 비쳐 사진 찍기에도 적당했습니다. 간단한 물과 손수건을 챙기면 한결 쾌적하게 둘러볼 수 있습니다.
마무리
안성 죽산리석불입상은 크지 않은 유적이지만, 오래된 시간의 숨결이 고요히 스며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화려한 장식도, 관광 안내의 소란도 없이 그저 묵묵히 서 있는 불상 앞에서 마음이 자연스레 가라앉았습니다. 돌결을 따라 손끝으로 스친 감촉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습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이 풍경이 어떻게 달라질지 궁금해졌습니다. 다음에는 겨울의 맑은 하늘 아래에서 다시 찾아, 눈 덮인 들판 속 불상의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켜온 존재의 무게를 다시 느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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